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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가 아주 뜨거운 이슈다. 일본의 규제의 원인은 정치적, 역사적 이유에서인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적인 수단을 무기로해서 우리나라를 향해 칼을 빼어든 모양새다.
이것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조치들과 국민들이 펼치고 있는 일본기업 제품의 불매 운동 등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한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필자도 이것들에 대한 나름의 찬/반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이에 대해서는 많은 글과 영상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으므로 굳이 여기서 다루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대신, 제목에서도 (조금은 자극적으로) 밝혔듯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돌아보게 된 "엔지니어링을 향한 대한민국 사회의 시각" 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특히 국민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첨단 공학 산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다.
물론, 직접 만나 서너시간 같이 얘기해 본 후 적는 글이 아니고 기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알려진 언행을 통해서만 추론한 내용이므로 잘못된 부분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 국민이 접근할 수 있는 최선의 정보가 아닌가? 따라서 필자와 같은 시각을 가진 국민들이 최소한 서넛은 있지 않을까 싶다.
과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그들이 그렇게 자주 언급하는 마법의 첨단 용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걸맞는 리더들일까? 기본적으로 이 포스팅의 내용은 아래 기사에서 다룬 박영선 벤처중소기업부 장관과 SK 최태원회장과의 설전을 중심으로 다룬다. 자세한 내용은 이 (링크)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참고로 필자는 이공계를 전공했지만 구체적인 반도체의 생산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실에 맞지 않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방법으로 이 주제를 다룰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설전 과정에서 나타난 박영선 장관이 가지고 있을 법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재구성하고 거기에 필자의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Q. 불화수소? 왜 국산을 안쓰는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실제로 불화수소가 우리나라 기업들에 의해서도 생산이 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오죽하면 안썼을까? 일본에서 생산하면 인건비가 비싸고, 운송도 상대적으로 어렵고 ... 그런데 오죽하면 일본제를 썼을까?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분야에서 (메모리 부문) 전세계 2위를 하는 기업이다. (삼성은 1위) (링크) 그들이 보유한 연구진은 가히 이분야 세계 최고의 브레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라고 더 싼 값에 더 좋은 물건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 소재가 한국산이든, 중국산이든, 미국산이든, 영국산이든, 이탈리아산이든, 이집트산이든, 케냐산이든 글로벌 기준에 맞는 최고급 품질만 보장해줄 수 있다면 소재의 국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명한 식당일수록 최고의 재료만을 엄선해서 갖다 놓는 법이다. 셰프는 재료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1초에 수십 수백만개의 1과 0으로 표현된 바이너리 데이터가 균일한 속도로 왔다갔다 해야하는 반도체는 이것에 예외일까? 조금만 민감한 사람이면 껍질을 벗겨서 알맹이만 줘도 한입만 먹고 이것이 오리온 초코파이인지 롯데 초코파이인지 금새 알아챈다. 그리고는 오리온 (혹은 롯데) 가 아니라고 더 안먹겠다고 한다. 그런데 초를 다투는, 아니 0.0001초를 다투는 반도체 시장에서 소재를, 그것도 다 낮은 품질의 소재로 바꾸는게 쉬운 일일까?
많이 양보해서 국산화를 통해 아주 약간의 성능이 떨어졌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SK와 삼성이 파는 반도체는 사실 최종적인 제품이 아니다. 또 다른 제품에 들어 가는 부품에 해당한다. 컴퓨터, 스마트폰, 자동차, TV 등등 첨단 장비들이 이 반도체들을 품게 되는데, 이것들을 생산하는 생산자 입장에서 미세하게 나마 낮아진 성능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중국기업이, 미국기업이 굳이 한국으로부터 반도체들을 들여와야 할까? 하락한 성능이 다른 중국, 미국 기업들의 반도체와 비슷한 성능을 보여준다면 이참에 그들도 거래처를 바꾸지 않을까?
그래도 삼성과 SK하이닉스 모두 국산, 중국산 소재들을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링크) 개인적으로 이것이 정말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수입 의존도를 줄이거나 다각화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하지만 쉽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엔지니어링에서는 아주 작은 셋팅 값의 변화가 결과에서의 큰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때로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도 하고, 반복의 실험의 결과와 장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새로 들여온 국산 소재에 맞도록 엄청난 경우의 수의 설정 값들과 각 설정 값들에 대한 안전성, 안정성, 효율성 등등의 테스트를 거쳐야 할 것이다. 모든 테스트에서 OK 사인이 나더라도 실제로 물건이 출고되고 산업과 일상생활 전반에 거쳐 완성제품에 탑재되어 널리 사용될 때에 과거와 동일한 성능과 안정성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폭발한 갤럭시 노트7도 당시의 기준을 다 통과한 제품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Q. 중소기업들 안키워주나?
최태원 회장이 국산 불화수소를 쓰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저품질' 때문 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박영선 장관은
"20년 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줬으면 지금의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라고 반문했다. 내가 최태원 회장의 머리 속에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이렇게 속으로 다시 반문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계 2위의 SK하이닉스는 없었겠죠."
미안하지만 지금 글로벌 IT시장은 전쟁과 같다. 이것이 현실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뛰어나고 잘하는 기업, 인재들이 손잡고 매일의 발전을 위해 미친듯이 경쟁하며 달려가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봐도 그렇다. 똑똑한 인재들을 흡수하기 위한 IT 기업들의 노력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대학 4년 과정만 나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30만불의 연봉의 연봉을 주기도 하고 (링크), 처음에는 백인 위주로 시작했지만 중국인재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많은 아시아계 엔지니어들이 일을 하고 있다. (링크)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고수하고 국가적 민족적 일원화만 고수했다면 지금의 혁신이 있었을까 싶다. 회사 안에 공짜 식당은 물론이고, 수영장, 탁구장, 게임장, 무료 스넥과 커피, 무료 전자기기 등을 제공하는 것도 인재 영입 경쟁의 일부이고 그만큼 지금 IT 업계가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오래 1, 2위를 하고 있는 삼성, SK도 쉽게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엄청난 압박 속에 그 자리를 치열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뛰는 손흥민 선수를 보자. 실력으로 인정 받아 상위 팀인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우리나라 선수를 볼 때면 참 자랑스럽고 때론 뭉클해지기까지 하다. 이제 토트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토트넘이 대한민국 소속팀인가? 왜 굳이 저 멀리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동양인 손흥민 선수를 쓰는 것인가? 잘하기 때문 아닌가? 토트넘도 자체적으로 유소년 프로그램이 있다. 그렇다고 거기 출신 선수들만 쓸 것인가? 미안하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그런 여유는 사치다.
박영선 장관은 자신의 논리를 따라 벤처중소기업부 장관답게 옷, 신발, 가방, 화장품, 가구, 전자제품 등등 모두 국내 중소기업 제품들을 쓰길 바란다. 그들의 20년 후를 위해. 그들을 밀어주고 끌어달라.
Q. 왜 이렇게 수입 의존도가 높은가?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이 들리는 얘기 중에 하나가 "너무 수입 소재의 의존도가 높은거 아니냐?" 이다. 이것은 비단 반도체와 관련된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매번 우리나라가 인공위성을 쏴올릴 때만 되면 들리는 '러시아산' 발사체 소식은 이제 너무도 익숙하다. (링크)
그런데 이공계 쪽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럼 수입해 쓰는 것이 나쁜 것이냐?"
하고 되묻고 싶다. 물론 국내 기술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좀 더 값싸게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런 외교적 공격을 당하게 될 때에도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더 연구에 힘을 쏟아야할 미래 먹거리들이 너무 많다. AI, 5G, 증강현실, 로봇, 유전공학 등등 더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너무 많이 있다. 기업과 국가가 가진 재정은 한정적인데 이미 다른 나라에서 개발하고 발전시켜놓은 것을 따라가는 데에 집중하기에는 이 시대의 첨단 과학산업이 너무 빨리 발전하고 있다.
국산화를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해야한다. 하지만 우선순위는 아닐 뿐더러 쉬운 일도 아니다. 금속틀만 구해다가 찍어내면 똑같은 붕어빵이 쭉쭉 나오는 그런 수준의 일을 논하고 있는게 아니지 않은가? 이에 대해서 정보통신부의 유영민 장관도 20년이 필요하다고 아래와 같이 인정했다. 똑같은 소재를 만드는데 20년이라 ... 그 20년 동안 우리의 삶은 얼마나 바뀔까?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이전엔 없던 아예 새로운 산업을 새로 개척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20년 후에도 '불화수소'가 이렇게나 중요한 소재일까?
가끔 집에서 요리를 해먹을 때가 있다. 처음엔 기분 좋게 시작하지만, 생각보다 맛이 별로거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을 보고 후회를 한다.
"그냥 사먹을걸."
생각처럼 되지 않은 과정에 스트레스를 받고 준비하느라 쏟은 시간을 생각하며 그 시간에 다른 더 값진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를 하며 하는 말이다. 현재 첨단 산업도 똑같은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격이 과도하게 높게 책정되지 않은 이상 잘 만들어진 제품은 사와야 한다. 굳이 그것을 똑같이 만들기 위해 시간, 인력, 돈을 쏟은 필요가 없다. 그것은 연구/개발의 궁극적 목표도 아니다.
그럼 이런 외교적 공격에 어떻게 대응하냐고 물을 것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유망한 산업에서 우리만의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모두가 필요해 할 분야 말이다. "너희가 A (불화수소) 에 규제를 걸면 우리는 B (우리가 개척한 소재/제품) 에 걸거야." 라고 선언하는 것이 무서워지도록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실제로 현 시대의 첨단 제품들은 다양한 국가로부터 여러 기업들의 특허와 기술들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자국의 기술로만 생존하기 힘든 것은 우리나라 기업 뿐이 아니다. 삼성, LG도 작년 기준, 미국 특허 순위 2, 5위에 해당하는 대단한 기업들이다. (참조) 정녕 북한의 '삼지연' 같은 태블릿 PC도 괜찮으니 수입품 없이 가보자는 것인가? 무엇을 만들든 돌아는 갈 것이다. 세월아 네월아.
마치며
위에도 밝혔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진심으로 우리나라의 반도체 생산과 디스플레이 생산이 일본에서의 수입소재 없이도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위에 구구절절 작성한 나름의 우려들이 민망해지도록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 난관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한 정치인의 발언을 일반화 시켜 우리나라 정치인 전부를 비판한 것 같아 송구한 마음도 있지만, 박영선 장관은 4선 국회의원이고 최근 다른 부서도 아닌 벤처중소기업부에 장관으로 발탁된 만큼 기업과 산업계에 관한 이해도에 있어서 우리나라 현 정치인들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슬프게도 여전히 우리나라 엔지니어들은 그냥 위에서 까라면 까야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자신들의 발언권은 없이 공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윗선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그런 일꾼 말이다. 내가 진로를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한 고등학생이라면 이거 어디 불안해서 이공계 관련 학과를 선택이나 할 수 있을까? 첨단 산업의 선두에 서서 국가와 민족적 책임까지 떠맡고 계신, '주 52시간 근무제'는 발로 걷어 차버리고 당분간 꺼지지 않을 조명 아래 매일 밤을 지새우며 1분 1초를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고 계실 우리나라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연구원 분들께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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